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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면] 용암리 글자 확대 글자 축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05-09-22 13:33 조회: 3323 트랙백주소 
용암리 방하(芳荷)

고려 때 임양덕(林陽德) 장군이 개촌(開村)했다는 전설과 함께 지금도 마을 후록에 임장군묘로 전해 오고 있는 고분이 있으나 그 후손이 현재는 살고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임씨 입촌 후 광산노씨 성연(成連)이 광주의 일곡동에서 이거 입촌했다고 하는데 성연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함평향교(당시 함평읍 내교리 외대 소재)를 새로 짓고 자기 집 노복들을 향교의 교직으로 하였던 경덕(憬德, 1562~1612)의 9세조(世祖)로 생존 년대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아 정확히는 말 할 수 없으나 대략 1400년대 말경에 입촌 했음을 알 수 있다.

경덕의 조부 사종(嗣宗)이 동래부사를 역임하는 등 번창한 집안이었다. 함평군사(郡史)에서는 광산노씨 함평 최초 입향을 절효공 6세손 상지(尙枝)가 아들 극창(克昌 1482~1568, 광주 목사 역임)을 데리고 나산면 송암리 음지에 입촌한 것으로 들고 있는데 노성연(盧成連)의 함평 입향은 200여년을 앞서고 있다.

군사 편찬 때 과산노씨들이 방하의 노씨 입촌자료를 제공하지 않은데서 과산노씨의 함평입향이 200여년이나 차이가 나게 한 것이다. 광산노씨 다음으로는 청주한씨와 김해김씨가 입촌했었다.

마을이 생기기 전에 골짜기에서 항상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착했다고 전해오는데 마을 이름은 방아와는 거리가 먼 방하(方下, 上方下, 下方下 두마을, 1789년 호구총수 지명) 후에는 "방하(芳荷 1912년 지명)"로 표기되고 말았다.

이 마을은 월야면이 신설되기 전에는 대야면 방하리라 했는데, 대야면이라 부르게된 연유는 방하 마을이 야(也)자 형국이고 정산리 서촌마을이 대(大)자 형국이라서 이 두 글자를 합하여 면명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용암리 연화(蓮花)

고려 말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확실한 기록이나 전하는 바가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현존 성씨 중에서는 동래정씨가 맨 먼저 입촌했는데 1700년대 중순경 영광군 염산에서 정윤조(鄭潤朝)가 옮겨 왔으며 동래정씨 다음으로는 전주이씨가 55년 전에 들어 왔다.

그러나 마을 뒷산에 지석묘가 분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에도 이 마을에 사람이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조 때 촌중에 묘한 지정(池井)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많은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 마을 이름을 "연화(蓮花)"라 했다고 전하나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이와는 뜻이 다른 연화동(連化洞)으로 표기되고 1912년 지명에는 연화(連花)로 표기되었다.

용암리 은암(殷岩)

처음에 황(黃)씨가 거부(巨富)로 황씨촌을 이루고 살았다 하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며 다만 마을 좌측에서 마을 앞을 가로 질러 흐르는 하천이 있었는데 그 하천을 마을 옆으로 흐르게 해서 황씨는 망하고 그 후 임씨가 살았으며 1700년대 말 경 김해김씨 김성국(金聲國)이 용암리 방하 마을에서 옮겨 왔으며 김해김씨 다음으로 원주김씨 김달옥(金達玉)이 1800년대 초경 해보면 발미 마을에서 옮겨 왔다.

그 후 함평박씨 박 한풍(朴漢豊)이 인근 송정 마을에서 살다가 1870년경 입촌했다. 함양박씨, 원주김씨, 밀양박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나주정씨, 진주정씨, 하음봉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인동장씨, 이천서씨, 연안유씨가 각각 1호씩 살고 있다.

원래 마을 뒷산이 토끼 형국이라 해서 "분토동(奔兎洞)"이라 불러 옸는데 1789년 호구총수 책자에 음만 따서 분토동(分土洞)이라 기록해 있으며 이 마을 출신인 한학자 박 한표(朴漢標)의 호인 은암(殷岩)을 따서 마을 이름을 "은암(殷岩)"이라고 했다.

용암리 신성(申成)

마을 주변에 지석묘가 분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 때부터 이미 주거지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마을이 이루어진 것은 마을 앞에 명지동(明池洞)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처음 마을이 형성됐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단 1호도 거주치 않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해주최씨가 400년 전에 터를 잡고 살다가 60년 전에 현재의 마을을 옮겨왔다 하는데 진주최씨와 전의이씨도 살았다 한다.

원래는 마을 형국이 말(馬)같다 하여 마감동(馬감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 고분과 관계가 깊은 지명)으로 불러오다가 대야면 관할구역일때는 "신성리(申成里 1912년 지명)라 했으며 신성(申成)에 대한 지명유래는 전하는바 없어 알 수 없다.

용암리 용산(龍山)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어느 성씨가 먼저 터를 잡았는지는 전하는바가 없어 알 수 없으며 다만 현존 성씨 중에서 진주최씨 최수필(崔壽弼)이 130년 전에 무안군 일로면에서 옮겨왔으며 그 후 인동장씨가 106년 전에 김해김씨가 42년 전에 함평이씨가 30년 전에 진주정씨는 1984년에 입촌했다.

이 마을 좌측에 안골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함평노씨가 이곳에 터를 닦아 살다가 본면 계림리 죽림마을로 이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마을 후등이 용의 형태를 닮아 흘러 내려와 이 마을은 용의 꼬리에 해당된다 하여 마을 이름을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한다. 마을민의 식수로 사용 중인 우물이 마을 앞에 있어 농사철의 농업용수로 쓰이고 있는데 이 우물을 용의 음부라 하고 우물물을 용의 오줌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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