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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면] 예덕리 글자 확대 글자 축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05-09-22 13:34 조회: 3284 트랙백주소 
예덕리 예동( 洞)

500여 년 전 지금의 불흥사 자리에 예슬( 洞, 슬은 마을, 마실, 마슬의 의미)이란 마을이 있었고 주(周)씨가 살았는데 화적의 피해가 심해 폐촌되었다.

그 후 지금의 예동에 심씨가 터를 잡아 세거하였으나 현 안갑오씨의 집터에서 "심망석(沈亡石)"이란 글이 새겨진 돌이 나온 후 심씨는 이촌했으며 죽산안씨 안희민(安希閔)이 1580년경 광산군 서창면 매월리에서 이거해온 이래 그의 후손들이 자작일촌하고 있는 셈이다.

현존 성씨 중에서는 죽산안씨 다음으로 전주리씨가 150년전에, 밀양박씨가 120년 전에 입촌했으며 밀양박씨, 청주한씨, 달성서씨, 해주오씨, 함평이씨, 곡부공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대구배씨 등이 살고 있다.

불흥사 자리에 있었던 "예슬( 洞)"이란 마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현재의 마을 이름이 되었다.
전에는 여우가 많이 산다해서 호동(狐洞)이라 했다.

예덕리 신촌(新村)

250년 전 죽산안씨가 인근 예덕리 예동 마을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누가 처음 입향한지는 알 수 없고 현존 성씨 중에서는 죽산 안씨 다음으로 인동장씨가 120년 전에, 순흥안씨가 90년 전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망태골"이라 불렀는데 이는 망대골(望大谷)의 발음이 잘못된 것이며 망대(望大)라 한 것은 고려 충혜왕때인 134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고 죽성군(竹城郡, 竹山의 옛 이름)에 봉작된 신 죽산안씨의 1세조 안원형(安元衡)의 16세손인 안형직(安衡稷)이 참의벼슬을 한 것을 기념으로 예동마을의 입구인 이 마을에 솟대(솔대)를 세웠는데 이 솟대가 높이 세워져 있어 근처에서 바라보아 우러러보니 큰 것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망대라 했다 한다.

그 후 150년전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신촌(新村)"이라 부르게 됐으며 예동 마을과는 한 마을이었으나 자연 마을이 되면서부터 신촌이라 불러 분리시켰다.

예덕리 신덕(新德)

이 마을 서북쪽에 약 100m 지점과 남쪽 300m 지점에 백제시대에서 마한으로 이어지는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 주변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지금도 밭을 갈 때에 깨진 옛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전하는바에 의하면 장과부가 부자로 살았다하며 이 마을 출신으로 150여 년 전 함평이씨 이돈하(李敦夏)는 함평 향교 도유사를 지냈으며 100년 전 이장옥(李章玉)은 한의사로 멀리까지 이름이 났다 한다.

현존 성씨 중에서는 90여 년 전에 광산김씨 김상진(金相震)이 월계리 덕산마을에서 맨 처음 옮겨 왔다.
예전에는 마분정(馬墳亭 1789년 호구 총수지명)이라 했는데 말무덤 몰무덤등으로 불리어오고 있는 지명으로 고분지대로 밝혀지고 있으며 현 신덕 마을에도 백제 고분이 있다. 마분정은 고분이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중간에 폐촌되었다가 100여 년 전 예덕리에서 새로 성촌된 마을이란 뜻에서 마을 이름을 "신덕(新德 1912년 지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 동쪽 들을 홍정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홍씨의 정자가 있었다는 지명으로 예전에 이 마을에 홍씨가 살았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는 예덕제(堤)에 잠겼는데 홍시암이라 부르는 샘이 있었다 한다.

예덕리 만가(万加)

이 마을 구릉에 마한의 전통을 이어 받았을 백제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선사시대까지 거스를 수도 있다. 현 신성연와산업에 입주하기 전에는 7호가 살고 있었으나 공장이 들어섬으로 해서 헐리고 2호가 남아 있다. 모(牟)씨, 정(鄭)씨, 박(朴)씨, 이(李)씨가 살았으며 50여 년 전에는 20여 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한다.

전언에 의하면 불갑산( 甲山) 동쪽 십리 밖에 가히 만인이 살 곳이라 해서 "甲東十里 可治万人之地"라 했다하며 노씨, 이씨, 장씨가 만호를 이루고 살것이라 하여 "魯李張 万家村"이라 했다한바 만가(万家)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연유된 듯 하며 1789년 호구총수와 1917년 조선면리 동일람 책자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제 때부터 부르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군의 주요한 문화 유적지인 예덕리 고분군을 축조하였던 당시는 이곳 일대에 큰 세력 집단이 웅거하고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고분군을 피한 동쪽에 만호를 세울 수 있는 신성연와산업(1984년 5월 개업)이 들어서고 보니 지명 만가의 불가사의가 이야기 되고 있다.

예덕리 발산( 山)

1984년에 마을 주민에 의해 반월현 석도가 발견됐으며 마을 입구 야산에 지석묘가 분포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존 성씨 중에서는 김해김씨 김학표(金學杓)가 130년 전에 과산군 동곡면 유계리에서 맨 처음 옮겨왔으며 인동장씨와 밀양박씨가 100여 년 전에 입촌했다.

광산김씨, 창원황씨, 전주리씨, 진주정씨, 청주한씨, 초계변씨, 순흥안씨, 영성정씨 등도 살고 있는데 예전에 금성나씨와 안동권씨가 살았다 하며 금성나씨 한분이 일제 때 이 마을에서 한약방을 했으며 50년 전에 떠났다 한다.

예덕리 무봉(武奉)

파평윤씨 윤상술(尹相述)이 월야면 월계리 덕산(서당골) 마을에서 살았었는데 1800년대 말경 영성정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 소유하고 있는 농경지가 이 마을에 있어 경작에 편리하도록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다. 그러나 봉산(奉山 1912년 지명)으로 불리는 곳에 마을이 먼저 형성됐다 하며 이곳에서 옹기그릇을 생산했는데 6 25사변 이후 폐요됐으며 지금은 단 1호도 거주치 않는다.

무봉에는 전에 최씨, 문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자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원래는 무선(武仙 1912년 지명), 봉산(峯山 1912년 지명)으로 각각 불리어오다가 1959년 이 마을 북쪽에 무봉제(武奉堤)가 설치되면서부터 "무봉(武奉)"이라 부르게 됐는데 무선은 두 선녀가 춤추는 형국, 즉 선인무수(先人舞手)라 해서 무선동이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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